2009년 9월 15일

고뇌의 원근법(서경식, 돌베게)


(띠지때문에 책의 표지가 가려져 너무나 아쉽다.)

"예술적 역량이란 원래 무엇인가. 그것은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독창적인 수법으로 그려내는 인간적인 역략이다. 고야나 피가소의 예를 들지않더라도 근대의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러한 역량을 발휘했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아름다움"에만 집작하는 한국 현대 미술 흐름을 꼬집는다.
저자의 말대로 어느 순간 미술은 교회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종교처럼 미술관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박제품이 되가고 있다. 혹 미술관에 가더라도 조용히 "작품"을 감상할 뿐이지, "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엿보거나 강렬한 감정의 상승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간혹 88원세대, 사오정세대, 또는 극심한 경쟁에 찌든 2009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을 그린 작품은 있지만 그 시각을 끝까지 밀어부치는 강결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이는 좋은 설치 작품은 많이 봤지만, 회화에서는 이상스레 좋은 작품을 보지 못한 개인적인 경험임)

이 책은 2009년의 서울과는 달리, 시대와 끝까지 불화하며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동안을 살아가거나 혹은 죽임을 당한 화가들의 이야기이다. 원시적인 색채로 인물을 강렬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에밀 놀테는 나치당원임에도 불구하고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혀 덴마크 국경에 숨어서 풍경속으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1차 세계대전의 잔혹함과 전쟁을 둘러싼 체제를 풍자적으로 그린 오토 딕스 또한 그림이 불태워지고 50의 나이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야만 했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시대를 응시했던 펠릭스 누스바움은 아우슈비츠에서 아내와 같이 죽임을 당했다. 서경식은 이 세 화가의 삶과 그림을 중심으로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응시한 화가들의)"고뇌의 원근법"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은 어찌본다면 서경식의유럽 미술관 순례기 정도 쯤으로 해둘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코스로 찾는 루브르를 찾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1937년 7월 나치 정권이 개최한 퇴폐미술전에 주목하고 무엇이 권력을 가진 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시대와 불화하게 하는지 이야기 한다. 어느 자동차의 광고처럼 무조건 이뻐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미의식을 이야기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알게된 많은 작가들, 그들을 통해서 어렵기만한 현대 미술을 향해
한걸음이나마 다가간 듯 해서 뿌듯한 글읽기 였다.


Ps. 저자는 한국이 세계 흐름의 주변부에서 "변두리"로 살아가며 여전히 분단과 이산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의 미의식은 언젠가 그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결국 마침표를 찍지 못한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응시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에밀 놀테, 최후의 만찬>

<오토 딕스, 댄서 아니타 베르버의 초상>

<펠릭스 누스바움, 유대인 증명서를 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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