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7일

우리는 조용하게 죽어가고 있다.(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나에게는 교수님이었던 이대근 기자의 칼럼....
자살이 아니라, 타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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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이대근 논설위원 grt@kyunghyang.com



지난해 8월1일 동작대교에서 19세 소녀가 투신했다. “고시원비도 밀리고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던 소녀는 고교 졸업 후 식당일을 했다. 소녀가 투신한 지 한 달여 지난 9월6일엔 여의도 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 자리엔 빈 소주병 하나, 그리고 유서 넉 장이 있었다. 한동안 날품을 팔지 못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엿새째 되던 날 창원 마창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11살짜리 아들을 떠밀었다. 곧 그도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날의 끝이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10월19일 전주의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됐다. 남편은 집 가까운 곳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 실직했고 월세와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다. 

해가 바뀌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 하월곡동 지하방. 60대 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평택 주택가 차안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이다. 안산·거제를 전전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내는 떠났다. 그에겐 어린 두 아이가 남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안양의 한 월셋방. 가스가 끊겼고 수건이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그곳에 젊은 여성의 주검이 있었다.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 놓은 지 며칠 지난 뒤의 일이다. 다시 열흘이 흘러 강릉의 한 원룸.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 

사회서 낙오된 자, 꼬리 문 자살
이 죽음의 기록을 그만 끝내야겠다. 물론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한창인 지금도 죽음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곧 봄이 오겠지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월곡동·평택·안양·전주·강릉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이야기다. 어린 소녀도 죽고, 대학생도 중년도 노인도 죽었다.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다. 일자리 못 찾고 실직하고 벌이가 적고 병들고 월세·학원비 밀린 이들은 다리 위에서 집에서 차안에서 공원에서 죽는다. 만일 가장이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면 그의 가족도 살아남기 어렵다. 국가는 경쟁력 강화하고 선진화하느라 겨를이 없고, 사회는 이미 정글로 변해 아무도 남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가족 살해다. 사회가 낙오자로 찍기만 하면 찍힌 이가 알아서 나머지 쓸모없는 가족을 사회로부터 제거한다. 이건 연쇄살인, 아니 청부살인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죽음의 행진 ‘침묵’만 할텐가
1980년대 박종철·이한열의 사망은 즉각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각성했고 연대했으며 행동했다. 그때는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어떤 신호도, 의미도 없이 죽어간다. 잠자는 사회를 깨우면 안 될 것처럼 남몰래 세상을 뜬다. 그런 죽음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다. 성공한 자와 이긴 자들이 구축한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이 죽음의 레짐에서 살아남는 것, 이것만 문제일 뿐이다. 

<시크릿 가든>의 작가도 밥과 김치가 없었던 최고은처럼 반지하방에서 사흘간 과자 한 봉지로 버틴 적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가난에서 탈출했지만 그의 성공이 그의 가난과 굶주림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가 비운 자리를 다른 사람, 가령 최고은 같은 이가 물려받는다면 그의 예외적인 성공을 공유하기는 어렵다. 만약 20대라면 실업자일 가능성이 높고, 중년이라 해도 비정규직이기 쉬우며 큰 병에 걸리면 가정이 파탄나고, 늙는 것은 곧 가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여자가 구원받는 길은 재벌2세의 여자가 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한 세상은 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2011년 2월 14일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By 말콤 글레드월)

유쾌한 지식 엔솔로지



이책은 말콤 글레드월이 New Yorker에 개재했던 글을 모아서 출간한 책이다.(이 책의 콘텐츠는 http://www.gladwell.com/archive.html 에서 영어로 읽을 수 있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서 또 다른 사건이나 사물을 분석한 내용이다. 예를 들자면 유방암을 판독하는 의사들의 머리와 마음을 분석하고 이를 위성사진을 판독해야 하는 정보기관에 적용하는 식이다. 즉 위방조영술을  통해서 유방암을 판독하는 의사들과 유조차와 생화학무기를 구별해야 하는 정보기관은 시각의 한계라는 동일한 벽에 부칮치게 된다.

2004년 미국 CIA는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서 이라크에 생화학 무기가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를 빌미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었으나 종전후 이는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의사들의 오진과 미국 정보기관의 오판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었는지, 오류를 범하는 이유, 시각의 한계 등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동떨어진 인물, 상품, 사건들을 엮어서 인간 심리의 본질을 드러내는 저자의 시각은 독창적이며 깊이가 있다. 또한 글쓰는 자세 역시 진지하기 짝이 없다. 글레드월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JFK JR.가 그를 죽음으로 이끈 판단을 검증하기 위해서 소형 비행기로 자유낙하(?)를 경험한다. 또한 로레알 샴푸를 둘러싼 여성의 지위 향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60~80년대까지의 미국 광고문화를 세밀히 고찰한다. (풍부한 지식으로 엄청난 입담을 과시하는 전형적인 영미권 베스트셀러 작가...빌 브라이슨??)

Ps. 이 책에 대한 서평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아무래도 책에 나온 소재들-로레알 삼퓨, JFK 주니어, 핏볼(개) 등이 국내 독자에게는 생소한 내용기 때문인 듯 싶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문화적 배경과 관계없이 인간 심리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