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6일

아이리더십-제이 엘리엇(PS. 안녕, 스티브..)

오늘 우리는 역사에  남을 일을 할 것입니다.(스티브잡스, '07년 1월 아이폰 런칭시)


이 책은 현 세대 최고의 혁신가라고 칭송받는 스티브잡스의 오른팔이었던 제이 엘리엇이 자신이 봐왔던 스티브잡스의 성공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제목은 리더십이지만 스티브잡스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스티브잡스의 인재 운영 원칙, 기업 운영 원칙, 제품 개발 원칙 등을 애플, 픽사라는 성공 사례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혹자는 그게 바로 리더십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나는 스티브잡스의 사업 원칙 안내서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Product Czar
스티브 잡스의 근본적인 사업 동인은 "제품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다. 그는 최고의 제품, 자신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주위의 모든 자원을 극한으로 사용했다. 또한 본인이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고 어느것 하나 소흘리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상과 완벽에 대한 비전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Why join the navy, it you can be a pirate
잡스의 성공의 원인으로 또 다른 한가지를 꼽자면, 인재에 대한 탐욕이다. 그는 최고의 인재를 얻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비범한 인재를 유혹하는 방법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컨데, 펩시의 CEO인 존 스컬리를 스카웃할때는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낼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을 건가요?"말로 미끼를 덥썩 물게 했다. 또한 인재들의 팀으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조직 문화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수단을 단순화하고 목적을 드높이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헨리 데이빗 소로우)
나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이나 우리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낌니다.(스티브 잡스)
잡스는 수많은 제품과 기능을 단순화시키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해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회사 자체를 오직 하나의 제품을 위해서 존재하는 Holistic company가 되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마도 주옥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어처구니없이 한 줄로 정리해야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이상, 현재의 성취 가능한 현실을 넘어서는 완벽에 대한 자신의 비전에 가까워지도록 계속 혁신하라"

PS. 이 포스팅을 올리려고 다시 책을 보고 있던 중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굿바이 스티브, 당신을 뛰어넘는 혁신가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2011년 10월 5일

꿈의도시-오쿠다 히데오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책도 무척이나 재기발랄하다. 하지만 책은 절벽에서 대책없이 낙하하고 있는 절망스런 현실과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꿈의 도시는 일본의 소도시 유메노(유메가 일본어로 꿈, 노는 영어의 no, 이 책의 제목은 역설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에 사는 인물들의 삶을 그린 군상소설(오래간만에 듣는 단어이다)이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모두 커다란 상처, 문제, 고민 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다들 자신의 삶은 생각만큼 절망적이지 않다고, 조금만 참고 견디면 다 지나갈거라고 문제를 외면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문제를 외면하기 위해, 종교, 사이버 환타지, 권력, 조직 등 무엇이든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의존하는 것은 결국 그들을 배반하고, 그들을 수많은 문제로 지뢰밭은 현실에 내동댕이 친다.  

저자는 자꾸 현실을 외면하려는 개인에게 제발 눈 앞의 현실을 피하려고 하지 말자고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공동체는 붕괴되고 모든 짐은 개개인이 떠앉고 살아가는 꿈의 도시....비단 일본 만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2011년 3월 7일

블랙 스완 단상

내털리 포트만의 연기에 감탄을 하며 보다가....

만일을 대비한 대역인 릴리가 발레복을 벗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튀튀를 입고 싶어 졌다...

(아...중년의 변태가 되가는구나...)


인터넷에서 전문가가 축출되는 과정

"고수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쉽게 설명하기린 애시당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개념부터 서로 공유되지 않으면 아마추어를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인터넷 게시판처럼 상대를 즉시 설득해야 하는 장에서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믿게 하기 어렵다. 따라서 고집스러운 아마추어 경험론자와 부딪히는 순간 고수는 점점 짜증이 나서 말을 독하게 하게 된다. 바로 이때 아무 생각없이 관망하던 다수가 끼어든다.
 님께서는 조금 더 안다고 심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어차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토론 내용이 자신에게 달콤하게 들리는지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고수는 짜증이 나서 게시판을 탈퇴한다. 결국 편견으로 가득한 아마추어가 소수의 팬을 형성하게되고...오류가 정론 행세를 한다."
From 위험한 관계학(송형석)

인터넷 게시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논쟁이란 것은 대부분 비슷한 거 같다. 목소리 큰 어설픈 아마추어 경험론자(내가 해봐서 아는데요....)를 설득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2011년 2월 17일

우리는 조용하게 죽어가고 있다.(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나에게는 교수님이었던 이대근 기자의 칼럼....
자살이 아니라, 타살입니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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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칼럼]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이대근 논설위원 grt@kyunghyang.com



지난해 8월1일 동작대교에서 19세 소녀가 투신했다. “고시원비도 밀리고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던 소녀는 고교 졸업 후 식당일을 했다. 소녀가 투신한 지 한 달여 지난 9월6일엔 여의도 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 자리엔 빈 소주병 하나, 그리고 유서 넉 장이 있었다. 한동안 날품을 팔지 못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엿새째 되던 날 창원 마창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11살짜리 아들을 떠밀었다. 곧 그도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날의 끝이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10월19일 전주의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됐다. 남편은 집 가까운 곳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 실직했고 월세와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다. 

해가 바뀌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 하월곡동 지하방. 60대 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평택 주택가 차안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이다. 안산·거제를 전전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내는 떠났다. 그에겐 어린 두 아이가 남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안양의 한 월셋방. 가스가 끊겼고 수건이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그곳에 젊은 여성의 주검이 있었다.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 놓은 지 며칠 지난 뒤의 일이다. 다시 열흘이 흘러 강릉의 한 원룸.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 

사회서 낙오된 자, 꼬리 문 자살
이 죽음의 기록을 그만 끝내야겠다. 물론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한창인 지금도 죽음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곧 봄이 오겠지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월곡동·평택·안양·전주·강릉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이야기다. 어린 소녀도 죽고, 대학생도 중년도 노인도 죽었다.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다. 일자리 못 찾고 실직하고 벌이가 적고 병들고 월세·학원비 밀린 이들은 다리 위에서 집에서 차안에서 공원에서 죽는다. 만일 가장이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면 그의 가족도 살아남기 어렵다. 국가는 경쟁력 강화하고 선진화하느라 겨를이 없고, 사회는 이미 정글로 변해 아무도 남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가족 살해다. 사회가 낙오자로 찍기만 하면 찍힌 이가 알아서 나머지 쓸모없는 가족을 사회로부터 제거한다. 이건 연쇄살인, 아니 청부살인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죽음의 행진 ‘침묵’만 할텐가
1980년대 박종철·이한열의 사망은 즉각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각성했고 연대했으며 행동했다. 그때는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어떤 신호도, 의미도 없이 죽어간다. 잠자는 사회를 깨우면 안 될 것처럼 남몰래 세상을 뜬다. 그런 죽음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다. 성공한 자와 이긴 자들이 구축한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이 죽음의 레짐에서 살아남는 것, 이것만 문제일 뿐이다. 

<시크릿 가든>의 작가도 밥과 김치가 없었던 최고은처럼 반지하방에서 사흘간 과자 한 봉지로 버틴 적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가난에서 탈출했지만 그의 성공이 그의 가난과 굶주림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가 비운 자리를 다른 사람, 가령 최고은 같은 이가 물려받는다면 그의 예외적인 성공을 공유하기는 어렵다. 만약 20대라면 실업자일 가능성이 높고, 중년이라 해도 비정규직이기 쉬우며 큰 병에 걸리면 가정이 파탄나고, 늙는 것은 곧 가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여자가 구원받는 길은 재벌2세의 여자가 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한 세상은 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